[관포지교]라는 말을 아는가. 관중과 포숙이라는 사람의 우정틀 잘 드러내는 사자성어. 모름지기 친구라면 그 정도로 서로를 믿어줘야 하는 것이 아닐까. 장영희와 김점선의 관계가 그러하다. 글을 쓰는 장영희와 그림을 그리는 김점선은 마음을 나누는 친구였을 것이다. 의도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같은 년도에 두달간의 차이를 두고 하늘로 돌아간 그들. 더이상은 그들의 글을 볼 수 없고 그림을 볼 수 없음이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들은 아마도 그곳에서도 서로 죽고 못사는 친구가 되었을 것이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마나마 소설이나 자신들에게 필요한 계발서를 읽는 인구는 있으나 시를 읽는 사람들은 거의 없지 않을까 싶을 정도이디다. 하물며 영시라니. 그런 편견을 깨고 싶었던 것일까. 장영희 교수는 자신이 직접 번역을 하고 컬럼을 써서 신문에 연재하는 일을 계속해왔다. 투병중에도 그 일은 놓지 않을만큼 애정을 가졌다.
그녀가 연재하는 신문을 보고 있었기에 나 또한 신문에서 그녀의 칼럼들을 읽어왔다. 길지 않은 이야기들 그리고 해석이 있어 더욱 쉽게 읽혀지는 시들이 아름다웠다. 그런 이야기들을 아름다운 그림과 함께 볼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작품이 있을까.
같은 저자의 작품은 2014년 출판된 [다시, 봄]이라는 책과 비교할 수 있겠다. '가지 않은 길'이라던가 '3월님 어서 오세요' 같은 몇몇의 시들은 두 권 모두에 수록된 것을 볼 수 있다. 1년이라는 타이틀을 정해놓고 그에 맞춰 시들을 엄선한 것이 그 책이라면 비채에서 출판된 이번 책, [생일, 그리고 축복]은 장영희 교수의 [생일]과 [축복]을 묶어서 합본으로 만든 것이다. 그만큼 많은 시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고 읽을 수 있고 그림을 느낄 수 있다.
혹시 시라는 것을 외워 본 적이 있는가. 학교 다닐 때 외워본적이 있지만 그 후에는 없을 것이다. 요즘 학생들에게는 시란 어떤 존재일까. 시험에 나오는 장르이면 공부를 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외면하는 장르일까. 영문학과나 일문학과처럼 문학을 전공으로 선택하는 학생들마저 줄고 있으니 몇년 후에는 대학에서 이런 학문을 전공하는 과조차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문학이라는 장르는 실생활에서는 전혀 쓸모없어 보이지만 우리의 마음을 달래주고 정신세계를 이해할수 있는, 삶에 가장 필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실용적이지 않다고 해서 외면해버려야 할 것은 아니라는 소리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특권일테니 말이다.
영어로도 간단할 뿐 아니라 한국말로도 간단하다. 더없이 간단한 이것이 시인가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있을수도 있겠다.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짧은 글로써 운율을 맞추어서 쓰는 것이 시라면 당연히 이 또 한 시이다. 글로리아 밴더빌트의 시. 철도왕의 딸로 큰 재산을 물려받았고 부유하게 살았지만 자신의 큰 아들이 눈앞에서 투신자살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던 그녀. 그녀는 어떤 마음으로 이 시를 썼을까. 이 짧은 한 문장을 통해서 자신의 시를 읽어줄 사람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누구나 다 내일 일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내일이 오늘과 다르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더욱 기대하고 그 기대감으로 또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 시 속에서 나타나는 저 한 아이는 바로 나 자신인 셈이다. 이런 식으로 시 속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해 가면서 읽다보면 재미도 있고 그닥 어렵지 않게 느껴진다.
저자는 아마도 그런 것을 바랐을 것이다. 그래서 해석을 하면서도 어려운 단어를 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흔히 쓰는 그런 말들을 사용했고 칼럼도 길지 않게 씀으로 말미암아 긴 글에 부담을 느끼거나 지칠수 있는 독자들을 생각했을 것이다.
봄이다. 어둡고 칙칙한 모노톤에서 벗어나 알록달록 화려한 색상의 꽃들을 기대하게 되는 그런 봄이다. 핑크빛의 꽃무늬가 가득한 이 책의 표지가 봄에 가장 어울려 보인다. 이번 봄에는 이 책을 들고 꽃놀이를 떠나봐야겠다. 아름다운 꽃비를 맞으며 나즈막히 시 한편을 읖조려 보노라면 그 곳이 지상낙원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평범한 오후 사람들은 저마다의 일로 은행을 방문한다. 돈을 찾기 위해서, 넣기 위해서, 빌리기 위해서 . 그들이 일을 계획하고 그곳을 방문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단지 우연이라는 것이 그렇게 맞아버렸을 뿐. 평범한 사람들이 평화롭게 일을 보는 그 시간, 2인조 강도가 침입한다. 완전무장을 한 채. 그들은 돈을 담으라고 가방을 넘겨 주지만 왠지 모르게 아마추어의 느낌을 피할 수는 없다.
그곳에 있었던 은퇴한 보안관 대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딱 하나 시간만으로 그렇게 판단했다. 전문가라면 자신들의 우위를 드러내지 않는다. 딱 필요한 업무만 보고 재빨리 달아난다. 그들은 시간을 너무 오래 끌었다. 필수적인 요소 2분을 훌쩍 넘겼다. 그들이 은행문을 나서는 순간 어떤 상황이 전개될까.
장르에서 등장하기 마련인 뛰어난 주인공은 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지금 막 감옥을 나온 나이 든 전과자가 그 주인공이다. 은행을 털다가 잡혀간 그. 도망갈 이유는 충분했지만 불가피한 상황때문에 그는 그곳에 있어야만 했다. 선의로 벌어진 일. 분명 잡히지 않아도 되는 그는 다른 사람을 살린 댓가를 이제 막 치뤘다.
오랜 기간 보지 못했던 아들을 그리워하는 그는 나가자마자 아들을 만나볼 참이다. 자신을 닮지 않기를 바랐다. 몇년전에 마지막으로 온 그녀의 편지속에서 아들은 경찰이 되었다고 했다. 자신을 닮지않음의 더욱 자랑스러운 아빠인 그는 아들을 그렇게 만나보고 싶어했다. 그런 그에게 아들의 죽음이 찾아온다. 이제 곧 만날 수 있는데, 자랑스러운 아들의 얼굴을 볼 수 있는데 운명은 가혹히도 그들 부자의 만남을 파괴해 버렸다.
경찰이었던 아들은 왜 무슨 이유로 쥭었던 것일까. 동료 4명의 경관과 함께 죽음을 당했다는 그는 무슨 조사를 하고 있었던 것일까. 이제 막 경찰이 된 그가 중요한 임무를 맡았을 리도 없고 순찰경관이었던 그가 조직범죄에 휘말릴 이유도 없는데 그는 왜 사람들이 잘 볼 수 없는 그 곳에서 동료들과 함께 죽은 시체로 발견되어야만 했을까. 아들의 얼굴을 잘 알지도 못하는 아빠는 그것이 안타깝다. 대체 자신의 아들이 무슨 일에 휘말렸을까가 궁금하다.
단지 궁금함에서 시작된 일은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온다.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워 도움의 손길을 뻗은 그. 자신을 체포한 전직 FBI요원에게 연락을 취한다. 아이들 때문에 일을 그만 둔 그녀는 자신이 직접 잡아서 감옥에 보냈던 그의 말을 믿어주고 그를 도와주게 될까.
악연이라면 악연일수 있는 그들의 만남이 이번 일을 계기로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 수 있을까. 전과자와 법 기관의 집행자가 한 팀이 되어 사건을 해결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상상밖의 일이라 더욱 흥미를 유발한다.
분명 이런 전개로 가면 이런 결론이 나와야 하는데 마지막 막다른 길에서 옆으로 휙 돌아버리는 루트처럼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이야기는 조금도 방심을 할 수 없고 마음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아들을 죽인 원인을 알고자 했던 아버지의 소망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아들의 죽음에 얽힌 사연을 과연 무엇일까. 주어진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갈 뿐이다.
주어진 시간 단 2분. 모든 것을 마무리 하고 튈 시간이다. 더이상의 여유는 없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뒷덜미를 잡혀서 차가운 감방 안으로 몸을 맡겨야 할 신세가 될 것이다. 욕심을 부리면 망한다.
액션 스릴러 영화를 방불케 하는 이야기가 전면에 펼쳐진다. '속도감'이라는 것은 이럴 때 쓰는 표현이다. 책장은 순식간에 넘겨지며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책을 손에서 놓을수 없게 되어 버린다. 로버트 크레이스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데몰리션 엔젤]이었다. 폭탄을 소재로 한 스릴러. 역시 대단하다라는 말을 쓸 수 밖에 없는 작가였다. 이름을 기억했다. 새로운 책을 보았다. 이 또한 역시였다. 그렇다면 이 작가 액션 스릴러 장르에서는 믿고 볼 수 있게 된다.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