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그 인터뷰로만 구성된 이야기. 이런 식의 구성은 일본소설에서 흔하게 보이는 방법인 듯하다. [우행록]에서도 마찬가지 기법이었다. 일가족 살해사건을 중심으로 그 가족의 주변에 살던 인물들을 인터뷰한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던 책.
물론 그 책은 중간마다 한 여자의 모놀로그를 삽입해서 단조로움을 탈피하려고 편집을 하기도 했다. 그 모놀로그는 사건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며 또한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는 사건을 주관적으로 설명해주기도 하고 있어 그 주인공이 누구일까 궁금하게 하는 기능을 하기도 했다.
사건이 일어나면 기자들은 사실을 정확하게 기술하려고 취재를 하고 기사를 작성한다. 주간지 즉 잡지에에는 그 사람들이 알지 못했던 뒷이야기들에 주로 초점이 맞춰진다. 실제로는 어땠더라 하는 이야기들, 사실이 바탕이 되지 않아도 좋다. 자신들만이 가지고 있었던 이야기들을 주위 사람들은 마구 쏟아내어 놓는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가십에 흥미 있어하며 관심을 가지기 마련이다. 그것은 나라를 불문하고 마찬기지인 듯하다.
같은 구성의 편집, 그러나 이 책은 또 다른 시도를 했다. 바로 물량공세다. 27명의 인터뷰를 통해서 한 여자의 일생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굉장히 많은 인물들로 인해서 헷갈릴까 염려할 수도 있겠지만 모든 사람들은 딱 한 번씩만 등장을 하고 있으므로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좋을 듯하다. 빌딩밖으로 떨어진 빨간 드레스를 입은 한 여자. 그녀는 자살일까 타살일까. 왜 그녀는 죽어야만 했을까.
그녀의 죽음으로 그녀를 알던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녀를 말하고 있다. 사람들의 군상이 다양하다. 전남편부터 그 집에서 일을 하던 집사, 그녀의 엄마 그리고 그녀의 아이들까지 저마다 다양한 집단의 사람들이 그녀가 살아온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이다.
한 사람을 두고 때로는 열 살 이상의 나이 차가 나는 것도 그렇고 목소리라던가 행동도 사람마다 인식이 다르다. 그녀는 조곤조곤했을까 아니면 당찼을까.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그녀가 돈을 많이 벌었다는 것이며 여자답고 아름다웠다는 것이다. 제목에는 악녀에 대하여하라고 하고 있지만 누군가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하며 그저 돈을 많이 벌었을 뿐 평범한 여자라고 하는 반면 누군가는 더없이 악랄한 여자라고 말을 하기도 한다. 그녀는 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젊은 나이에 아이를 낳았던 것은 맞지만 그 아이들은 대체 누구의 아이일까. 그녀의 나이는 어느 것이 정확하며 그녀를 낳아준 엄마는 또 누구인가. 정리가 될 듯하면서도 다음 사람의 입장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또다시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그녀에 대해서 알아가고 싶지만 더 헷갈리기만 한다.
사람들이 규정하는 악녀는 무엇일까. 악남이라는 말은 없는데 왜 '악녀'라는 표현은 있는 것일까. 자신의 수완을 이용해서 남들보다 잘 살고 부를 축적하면 다 악녀인 것일까. 하기야 그 와중에 그녀가 사람들을 속이고 기만한 죄를 묻자면 악녀라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긴 하다.
[악녀에 대하여] 하고 했지만 그녀에 대하여 더 알지 못하게 되었다. 한 여자에 대한 사람들의 관점, 그것이 지극히 주관적임을 다시 알게 된다. 나를 보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나를 평가하고 있을까. 새삼 궁금해진다.
누군가 저에게 베니스를 가봤냐고 물어봤다면 저는 당연히 다녀왔어요,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피렌체를 들러서 베네치아 즉 베니스를 들어갔다 왔으니까요. 수상버스를 타고 들어가서 구경을 하고 수상택시를 타고 나왔고 산마르코 광장을 둘러보고 곤돌라도 타보고 직접 걸어보기도 하면서 이곳저곳을 샅샅이 훑어봤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작가님의 책을 보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역시 살아보는 것과 다녀오는 것은 다른 것이더군요. 한 달이라고는 하지만 작가님은 그곳 한 장소에서 꼬박 삶을 살아보셨고 전 단지 그곳을 관광한 여행객일 뿐이니까 말입니다. 당연히 그곳도 사람이 사는 곳일 텐데 저는 왜 단지 그곳이 작은 무인도나 되는 것처럼 생각했었는지 의문스럽습니다.
더군다나 저는 모든 것을 봤다고 생각했지만 그곳에 화방이 있는 줄은 몰랐고 골목골목을 다니면서 명품 시계점도 보고 오래된 낡은 가구점도 보고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나만이 발견한 것인 양 즐거운 마음을 품었습니다만 역시 관심이 있는 것만 보인달까요.
제가 간 날은 유난히도 흐린 날이었고 비까지 뿌려대서 우산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오래된 도시들을 헤매는 재미가 있었답니다. 작가님처럼 어지간한 길치인 저는 작은 동네라 생각하고 여기저기를 걸었었네요. 시간 약속이 있어 깊숙이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만약 그랬다면 전 아마도 작가님처럼 길을 잃고 동행들과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말도 통하지 않는 독일 공항에서 무작정 연착되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작가님은 동생에게 유서를 적었지요. 대책 없이 낙관적이라고 자신을 칭하셨지만 작가는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남들과는 다른 관점에서 삶을 살아가는 것 말이죠. 일을 하다가도 다른 생각을 하고 있고 급격하게 기분 전환이 이루어지기도 할 테죠. 그런 작가님을 보면서 사람들은 미친 거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뭐 어때요. 그게 작가인걸요. 그렇게 생각하시면 좀 더 마음이 편해질까요.
한 달 내내 그리신 작품은 이렇게 책으로 접해도 좋네요. 작가님 만의 특유한 감성이 살 있는 듯 느껴집니다. 사진으로 찍고 그것을 참고로 해서 그려내는 작품들은 닮은 듯 또 닮지 않았어요. 사진을 그대로 그려낸다면 그냥 사진을 보지 그림을 볼 필요는 없겠지요.
작자각님의 작품에서는 당신의 감성을 느낄 수가 있어서 좋네요. 제가 이해한 것이 과연 작가님이 의도하신 것과 같을지 모르겠지만 그 또한 뭐 어때요. 그림은 그리는 사람 마음이고 그려 놓은 다음에는 보는 사람 맘인걸요.
저는 작가님의 작품 색감이 좋아요. 한지에 바탕색을 하나하나 정성을 다해서 바르고 말리고 그 위에 다시 그려진 작품들. 한국적이면서도 한국적이지 않은 느낌을 주는 그 작품들의 색감이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느낌이 들어요. 특히 블루톤의 그림은 더욱더요. 옆에다 두고서 하루종일 보고 있어도 좋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입니다.
제게는 작가님의 밥을 먹어볼 기회는 닿지 않을 테니 작가님의 밥을 먹은 친구들도 부럽군요. 남이 맛나게 먹어주는 것이 좋아서 신나서 요리를 하시는 작가님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그곳까지 갔으면 그 나라 사람들의 음식을 먹고 때로는 작품을 그린다는 핑계로 빵으로 때울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한국적인 쌀을 고르고 한국적인 음식을 해서 먹는 작가님의 모습. 고집 있어 보여서 좋습니다. 작가란 그래야지 라는 고정관념은 별로지만 그래도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한다는 것이 멋지잖아요.
한 달간 살면서 하루하루의 일상을 글로 쓰고 사진으로 담아내고 그림으로 그려낸 이야기들을 모은 책. 이 책을 보면서 저는 제가 갔었던 베네치아의 그 물결을 생각했습니다. 아름다운 물의 도시 베니스. 작가님의 작품이 아름다운 이유가 거기 있었군요. 당신은 오래 들여다보는 사람이면서도 오래 들여다보아야 할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