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물이 무서워서 수영을 못한다고 말을 했을 때 "샤워는 어떻게 하니?"라고 물어보던 외국인 선생이 생각났다. 섬나라여서 거의 모든 아이들이 수영을 당연히 하는 것으로 알고 있던 곳. "바보야, 샤워는 바닥에 발이 닿지만 수영은 발이 닿지 않으니 무섭지."라고 대답을 해줬었다.
그래, 나는 물이 무섭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더욱더 물이 무섭다. 내가 물 속에 있을때 누군가가 내 발을 슉 하고 잡아당길까봐, 아니면 마누엘라처럼 누군가 휙하고 내 발을 치고 지나갈까봐 그게 무섭다. 결국 나는 수영을 배우지 못할거다. 아마도.
초짜 신참에 이미 익숙하고 닳을대로 닳아버린 고참 형사. 이 둘의 콤비는 옳다. 주인공의 성별이 같아도 달라도 재미나는 구성이 되고 사건들을 대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차이를 보는 것도 흥미롭다. 신참 여자 마누엘라와 그녀의 상관 에릭 슈티플러. 마초성격에 여자가 나서서 무엇인가 주도하는 꼴을 보지 못하는 슈티플러에게 끊임없이 말을 해대며 무엇이든 의욕적으로 나서서 하려고 하는 마누엘라가 좋게 보일리 없다.
결국 다른 팀원들이 회의를 하는 시간에 그는 상관의 지위를 이용해서 마뉴엘라에게 사건조사를 지시한다. 의도한 왕따가 된 것이다. 물론 꼭 필요한 조사이긴 했다. 익사한 시체에서 나온 물과 비교하기 위해 사건 주위의 여러개의 호수의 물을 다 떠오라는 것. 마누엘라는 사건도 해결하고 이 팀에서 자신의 존재도 지킬수 있을까.
이토록 아름다운 문구들은 이것이 진정 장르소설인가 싶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물속에서 춤을 추는 것은 판타지 소설에서처럼 과히 아름다운 그림은 아니다. 이것이 그녀의 마지막이라면 말이다. 장르소설답게 끊임없이 벌어지는 사건은 연속성을 띄고 있다. 일련의 사건들이 모두 여자라는 공통점이 있고 그 여자들은 모두 물에 익사한 상태로 발견된다.
범인은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에릭에게 드러내지만 에릭은 그것을 감춘다. 여기서부터 수상해진다. 에릭이 사건을 풀어가려는 것이 아니라 묻어버리려는 느낌이 든다. 이 사건들은 모두 그와 관련이 있다. 사건의 피해자들도 에릭과 관련이 있다. 없을 수가 없다. 두번째 발견된 여자는 바로 그의 전부인이었으니 말이다.
윗선에서는 당장 에릭을 불러들이고 그는 사건에서 빠지게 된다. 중압감에 못 이겨서 힘들어 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하는 경우를 소설에서 흔히 본다. 그들의 캐릭터 자체가 힘들고 무겁기 때문에 그렇게라도 이겨낼수만 있다면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요네스뵈의 '해리'도 그러지 않았는가. 한때 알콜중독까지 갔었어도 훌륭하게 자신의 임무를 다 해낸 그를 보면서 다른 캐릭터들도 그럴것이라고 믿어야만 했다. 정말 구제불가능할 정도로 썩은 경우를 제외하면 말이다.
[지옥계곡]으로 빙켈만의 첫작품을 읽었다. 추운 겨울을 배경으로 산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읽으면서 정말 살이 시리도록 추움을 느겼어야 했다. 생생함이 살아있는 소설이라고 느꼈고 그 책을 읽으며 작가의 이름을 똑똑히 기억해두었다. 이제 그의 작품은 산에서 내려와 물로 돌아왔다. 그 시린감은 여전하다. 이제는 차갑도록 시린 물이다.
물을 배경으로 연속적으로 사건을 저지르고 있는 사람은 진정 물의 정령인 것일까. 그는 에릭에게 무슨 원한이 있는 것일까. 연속적인 사건이 풀려가면서 에릭이 숨기고 싶었던 이야기가 드러나며 그의 이야기를 풀어놓음과 동시에 더 큰 한방을 날려준다. 순간적으로 숨을 멈추게 되는 그런 한방. 얼마전 보았던 영화 [특별수사]가 생각나는 시점이다.
당신은 축구를 좋아하는가? 만약 좋아한다면 당신이 응원하는 팀은 어디인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토트넘? 아스날? 리버풀? 당신이 그 팀을 응원하고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이 좋아하는 팀으로 인해서 그 사람을 단정한다는 것은 정말 웃기는 일같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대략 그 설명이 합당하다는 듯이 들리기도 한다.
모리사와 아키오, 요나스요나손, 리안 모리아티, 조조모예스 그리고 프레드릭 배크만. 이 작가들의 공통점을 알 수 있을까. 그것은 작가 이름을 보지 않고 작품만 읽어도 누구 작품인지 알겠다 싶을 만큼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좋게 말하면 그렇고 자칫하면 지루하거나 비슷해 보이는 면이 있을수도 있다.
[오베라는 남자]와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에 이은 [브릿마리 여기있다]까지. 첫작품을 읽을때는 몰랐지만 그 이후로 세 권을 읽고 나니 이 작가의 특징이 어떤지 대충은 알겠다. 작품을 읽으면서 등장인물만 봐도 이 작가다. 하고 연상지어 떠올릴수도 있을 것 같다. 약간은 까칠한 캐릭터. 그러나 전혀 속마음은 그렇지 않은 주인공. 그러므로 인해서 후반부에서는 한번쯤 예상치 못한 장면에서 찡하게 되는 부분까지 세 권의 책은 묘하게 닮아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할미전]에서 주변인물로 등장했던 브릿마리는 이번 책에서는 당당히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이번 책에서의 누구나 다음번 책에서 주인공으로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는 법이다. 더욱 한 명, 한 명 캐릭터들에 초점을 맞추어서 책을 읽게 된다. 오베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죽음으로 인해서 눈물이 주룩주룩 내리던 전작들을 보았을 때 혹시 이번에도 그런 일이 있을까 염려된다면 예상한대로 이번에도 그런 장면들은 존재한다. 하지만 브릿마리의 인생역전기를 통해서 유쾌,발랄.감동적인 이야기로 보상할 수 있을 것이다.
평생을 남편만 바라보면서 집안일만 해온 브릿마리. 남편의 바람에 집을 나서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도 한다.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것. 고용센터에 가서 일자리를 달라고 한다. 그것도 환갑이 넘은 나이에 말이다. 그저 무시해버리고 넘어갈수도 있었지만 끈질긴 브릿마리는 어찠거나 임시직이어도 좋은 일자리를 얻어내고 그것을 기회로 보르그라는 지역으로 향하게 된다.
경제위기로 인해서 모두가 다 떠나버린 페허같은 동네 보르그. 그녀가 이 동네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말도 안되는 일들이 그녀로 인해서 벌어지면서 그녀는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아이들 축구팀의 코치까지 맡게된다. 그녀가 맡은 아이들의 축구팀은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까.
그저 막무가내이고 융통성 없고 답답하고 앞뒤 꼭꼭 막힌 나이 든 노인네라고만 생각했다. 그녀로 인해서 달라지는 아이들을 보고, 사람들을 보고, 마을들을 보면서 이런 사람이 한명쯤은 세상에 있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 이런 사람도 있어야지. 너무 물러터진 사람만 있으면 안되겠지 하고 말이다.
브릿마리의 고군분투기. 지난 주 보았던 '세탁의 달인'이 소개해주던 과탄산소다를 책에서 보니 반갑기는 한데 정말 이게 만능 세제인지는 잘 몰겠다. 브릿마리에게만 가능한 건 아니겠지??
이 책을 읽을 당시 꽤 높은 고열로 시달리고 있었다. 약을 먹으면 열이 떨어지고 약발이 다하면 다시 열이 올라가는 돌고도는 악순환. 왠지 모르게 이 책도 물고 물리는 관계인 그런 사슬구조를 닮아있다. 그저 단순한 단편들이 여러개가 모인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 단편의 주인공들이 저마다 서로 만나기도 하며 관계를 가지기도 했으며 어쩌면 한번쯤은 지나치면서 만나기도 했던 그런 사이들이었던 것이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나면 그 사람의 주변인물을 다시 주인공으로 삼아서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는 사슬과도 같은 관계구성의 이야기. 이렇게 되면 앞의 이야기에서 어떤 이야기가 펼쳐졌는지, 다음번에는 누가 주인공으로 나올지 더욱 유의깊게 읽게된다.
한 남자가 있다. 세상에 아무 관심이 없어 보이는 남자. 그 남자는 가족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나를 만난다. 연락을 한다. 나는 그 연락을 뿌리치지 못하고 계속 만난다. 결혼을 앞두고 있어서 예민해진 탓일까.. 그저 같이 살던 사람과 형식적인 결혼일뿐인데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그렇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떠난 여행에서 그들은 무슨 말을 했던가.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그 남자는 지킬 수 있었을까.
'불꽃'이라는 제목으로 펼쳐지던 이야기는 그 남자를 상사로 둔 다른 사람을 주인공으로 '손자국'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이어진다. 두번째 이야기가 끝나면 이번에는 그의 아내 차레다. 두번째 이야기의 주인공 남자의 아내. 그녀는 어떤 비밀을 숨기고 있을까. 어찌보면 공간적 배경도 다 거기서 거기, 그동네가 그동네일지도 모른다. 서로가 연결되어 있는 주인공들이 멀리 떨어져 살 일은 없으니 말이다.
같은 공간적 배경이라해도 우리는 얼마나 많은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가. 나야말로 한 동네에서 오래도록 살고있어도 주위에 누가 있는지는 물론이거니와 옆집 사람조차도 모르니 이 현 사회에서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흔적'이라는 제목아래 불꽃, 손자국, 반지 , 화상, 비늘,음악이라는 소제목들이 들어있다. 각각의 소제목들을 가만히 들역다보면 그것들이 흔적을 남기는 물건임을 알 수 있다. 불꽃도 손자욱도 반지도 화상도 모두 흔적을 남기는 것들이다. 비늘이나 음악도 마찬가지다. 음악이 무슨 흔적을 남기는가 하겠지만 좋은 음악은 그리고 시기에 딱맞는 음악은 누군가의 귀에, 누군가의 뇌리에 그리고 누군가의 마음속에 흔적을 남기게 마련이다.
오래도록 남아서 그 사람의 마음을 달래기도 하고 그 사람의 마음을 후벼파기도 할 노래. 누구나 다 그래본 적 있지 않은가. 하나의 노래가 계속 머리속에 남아서 무한반복되던 기억. 그런 식으로 음악은 흔적을 남긴다.
얼마저 읽었던 [브릿마리]가 생각났다. 평생을 끼고 한번도 빼지 않았던 결혼반지. 그것을 빼고 나자 하얗게 생겨버린 흔적. 그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 그녀는 손가락만 선탠을 하기를 원했었는데.
흔적은 때론는 사람의 기억을 소환하기도 하고 때로는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과거를 지우고 싶지만 그 흔적때문에 지우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당신의 마음속에는 어떤 흔적이 남아있는가. 그 흔적으로 인해서 당신은 어떤 기억을 가지고 있는가. 남아있는 흔적이 아픔이 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