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곳은 뉴질랜드 공항이었다. 높은 건물들로 막혀있는 하늘이 아니라 탁트인, 360도 어디를 둘러봐도 하늘뿐인 경험을 처음 했다. 하늘만 봐도 하루가 금방 가는 시절이었다. 한국 사람들 대부분이 살고있는 아파트와는 다르게 오밀조밀 아기자기한 집들이 모여있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친구네를 가도, 이웃집을 가도 다들 다른 집의 모습이 처음 가는 집은 구경하느라 바빴다. 그런 구경은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저마다 특색있는 집들. 내부도 다 달라서 어느집을 가도 보는 재미가 있었다.
다시 획일화된 아파트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가끔씩은 그냥 일반적인 집이 그리울때가 있다. 좁은 나라에 여러 사람이 모여살기 위해서 지어졌던 아파트는 평수에 따라서 자신이 가진 자산의 일종이 되었고 집이란 안전하고 편리하게 살면 된다는 신념하에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요즘은 자신이 직접 설계해서 집을 짓는 경우도 많아지긴 했다. 신문에서 가끔씩 특이한 건축물을 볼 때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Architetecture, 건축을 소재로 한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가 될까. 소수의 인원으로 꾸려진 설계사무소. 노미야 선생님을 중심으로해서 돌아가는 일터. 이곳에 발을 들이게 된 신입, 사카니시. 여름을 맞이해서 별장으로 떠나서 일이 진행된다. 다른 때와는 다르게 도서관 경합에 참여하게 된 사무소. 여름동안 도서관 설계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요즘만 해도 컴퓨터가 발달하고 프로그램도 많아져서 훨씬 더 자세하고 편하게 설계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야기속에서는 아침마다 사각거리며 연필을 깍고 제대로 된 설계사가 되기 위해서 수십개의 동일한 줄을 긋는 연습을 하는 듯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풍부하게 드러난다. 몇 안되는 직원들끼리 여름별장에서 밥을 해먹으면서 일을 하는 모습 또한 그러하다. 지금 사람들에게 그런 식으로 일을 하라고 시켰다간 다 도망가지 않을까.
설계와 건축이야기를 그리고 있지만 인간관계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요소가 아주 다분하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사랑이야기 또한 양념으로써 충분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건축이란 단지 겉모습이나 내부설계만 하는줄 알았다. 하지만 노미야 선생님은 그렇지 않았다. 도서관을 설계하면서 그 속에 들어가는 책꽂이의 형태와 재질까지도 생각했고 책상이나 의자까지도 꼼꼼하게 정하고 배치를 하고 그것을 미니어처로 만드는 모습에서 정말 이 사람이라면 내가 살고 싶어하는 집을 지어달라고 맡겨도 되겠다는 안심이 들었다. 자신이 지어주었던 집에 대한 보수까지도 챙기는 모습에서는 더욱더 말이다.
작품이야 그냥 바라만 보면 된다. 하지만 건축이라는 것은 작품이면서 동시에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 된다. 그러니 더욱 튼튼하고 보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간과하지 않은 노미야 선생님의 센스가 대단하다 싶다. 이야기속이 아닌 실제 세상에서도 이런 설계가가 있다면 더욱 좋을텐데 말이다.
신입사원인 사키니시를 통해서 처음 일을 맡게 된 두려움과 활기참, 그리고 신선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선생님이 맡기신 일을 잘하기 위한 사카니시의 감정을 이런 비유로 설명해 놓고 있다. 너무나도 확실히 공감할수 있는 비유가 아닌가. 주어진 일을 새 노에, 일의 시작을 노젓기에 비유하다니 정말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일단 올라탔으니 신나게 그리고 열심히 저어야 할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물속으로 가라앉고 말 것이다. 사카니시는 자신이 이 조직속에서 어떻게 잘 스며들 수 있는지를 배우게 될 것이다. 경합은 이미 담합이 되어 있어서 자신은 참여하지 않겠다고 한 선생님이 직접 참여한 도서관. 노미야건축설계사무소는 경합에서 이길 수 있을까. 이겨서 그들이 만들어 내는 도서관은 어떤 모습일까. 스톡홀름 도서관을 참고로 해서 만들어졌다고 하는 그들만의 도서관은 어떤 모양일까. 궁금해진다.
신문에서 연재되고 있는 기사중에 도서관을 취재해 놓은 기사가 있었다. 제주도의 도서관부터 가까운데 있는 도서관까지 저마다 자신만의 특징을 오롯이 담은 도서관들이 전국각지에 흩어져 있었다. 우리도 이런 멋진 도서관이 잇다고 자랑하고 싶다.
잠잠하니 그리고 담담하니 서술되어 있는 그 여름의 별장이 떠오르는 듯한 한 권의 이야기다. 산들 바람이 부는 짙은 숲속에 들어가서 해먹이라도 걸어놓고 여운을 즐기면서 자연속에서 읽어준다면 이야기 속에서 추구하는 작가의 마음이 더욱 공감할수 있지 않을까. 여름은 오래 그곳에, 그리고 이 곳에 남아 있다.
어린 아이에게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니? 하고 물으면 아이들은 무엇이라고 대답을 할까. 아무것도 모르는 시절에도 아이들은 무언가 하고 싶은 것이 정해져 있는 것일까? 지금 현시대의 학생들은 적어도 자신이 무슨 일을 하며 평생을 살아야 하는지를 자세히 모르는 것임에는 틀림없는 듯 하다.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물어보라.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아마도 열명 중 반이상은 아직 모르겠다고 대답을 할 것이다.
그것은 비단 고등학생 뿐아니라 대학생들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자신의 전공이 정해져 있는 대학생들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물론 전공과 직업이 딱 맞아 떨어지지지는 않는다. 자신이 공부한 것을 그대로 사회생활에서 쓸 수 있다면 참으로 다행한 일이지만 그저 수박겉핡기식으로 학위만을 위한 공부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직업에 대해서 가장 많이 생각하는 시점이 대학졸업반이다. 이제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말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뚜렷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거나 하고 싶은 것이 없을때 이상과 현실은 충돌을 겪기 마련이고 딜레마에 빠지기 마련이다. 아직 준비가 덜 된 까닭도 있겠지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지 못해서 사회에 나오지 못하고 졸업을 미루는 경우도 많이 본다.
여러 수백통의 이력서를 쓰고 지원을 했어도 여전히 직업을 구하는 것은 어렵다. 더군다나 자신이 원하는 직업이 인기가 있는 직업일때는 그 경쟁률이 더하다. 요즘 공무원 시험의 경쟁률이 몇천대 일이라고 들었다.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렵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렇게 일을 시작하면 무엇을 하는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다면,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는다면 그 노릇을 어찌한단말인가. 하루이틀 하는 것도 아니고 학교처럼 방학이 있는 것도 이아니고 그야말로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그저 아침에 일어났으니 회사에 나오고 누군가 무엇을 시키니 주어진 일만 받아들이다 결국은 주저앉고 말것인가 말이다.
이 책에서는 8명의 실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자신이 하던 일이 있지만 과감히 그만두고 직업을 갈아탄 경우이다. 부모님이 바라던 대로 은행에 들어갔지만 자신이 원하는 일이 아니어서 고민하던 이는 증권회사에 다시 취직을 했다. 하루하루 왜 일을 사는지 모르던 그에게 이직이라는 것은 새로운 통로를 만들어 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경우나 과자제조업체에서 식품회사로 이직을 한 경우, 작은 광고대행사에서 조금 더 큰 곳으로 옮겨 간 경우처럼 비슷한 직종으로 변경을 꾀한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고 전혀 다른 이질감을 느끼기 보다는 익숙한 느낌도 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공무원으로 든든히 자리 자리를 보장받을 수 있었지만 벤처회사의 임원으로 간 경우만 약간 다를뿐 대부분이 비슷한 직종으로 이직이었다.
이 책을 보면서 이직이라는 것에 다시 생각을 해보는 계기도 되었지만 일본의 회사체계도 우리나라와 별다르지 않다는 것에 대해서 놀랐다. 공무원은 철밥통이라고 하는 이야기가 비단 우리나라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신입사원이 잔심부름이라 하고 상사들을 도와주기만 하는 것도 마찬기가지였다. 또한 심각하게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고민하는 것조차 같았다. 아마도 전 세계적으로 이런 고민들은 다 같을지도 모르겠다.
일이라는 것이 단기간에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평생을 들여서 해야 하는 것인만큼 더욱 큰 고민이 될수도 있다. 한번 정한 일이 자신의 천직이라고 생각하던 때는 지났다. 자신의 일자리가 영원불변히 보존될 것이라고 생각되던 때도 지났다. 한 우물을 꾸준히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일이 자신이 평생 해야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이 든다면 과감히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당장 그만두고 옮기라는 말은 아니지만 말이다.
스노우캣, 콩고양이,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고양이집사... 고양이에 관한 책을 개에 관한 책보다 많이 읽었다. 많은 동물들 중에서 '고양이'라는 동물이 특별히 사람들에게 더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이 남는 것은 '장화신은 고양이'의 그 아련한 눈망울이었다. 애니메이션에서 나왔던 그 고양이 눈을 보는 순간 극장에 앉은 사람들의 마음이 다 같지 않았을까. 저런 눈으로 쳐다보면 무엇이라도 다 해주고 싶다는 그런 마음 말이다. 실제로 고양이 눈이 그렇게 보이지는 않겠지만 아마도 사람들은 그런 고양이의 눈망울에 매혹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이야기는 소설이 아니다. 실제로 정신과의사인 작가가 어느날 우연히 고양이를 만나게 되고 그 녀석과 함게 살아가게 되면서 느낀 이야기들을 담백하게 서술해 놓은 에세이다. 하지만 그 배경을 모르고 읽는다면 나이든 할아버지와 작고 귀여운 새끼고양이의 동거이야기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를 정도로그만큼 이 이야기는 아기자기하고 재미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전혀 고양이를 키울 생각은 없었던 할아버지 닐스. 어느날 우연히 자신의 차고에서 새끼고양이 한마리를 발견한다. 처음에는 그냥 무심히 지나쳐버리고 만다. 그러나 한번이 두번이 되고 두번이 네번이 되면 인연이라고 했던가. 불편한 것들이 가득차 있는 공구박스함에서 자는 고양이를 계속 보게 되면서 어느틈엔가 공구들을 꺼내고 폭신한 수건을 깔아서 그녀석이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러면서도 전혀 그녀석을 키우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자주 집을 비우는 그들의 일상을 볼때 누군가를 키운다는 것은 부담일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딸과 손자들이 알게 되면서 그들이 자리를 비울때면 돌봐주겠다고 선뜻 나서니 관심이 생기지 않을수도 없다. 실제로 그가 고양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다. 고양이들을 좋아했던 어머니의 영향도 있고 개도 키웠던 그였다. 이름도 없던 녀석에게 '우리작은 나비'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래도 녀석은 여전히 밖을 돌아다녔고 닐스와 나비는 썸아닌 썸을 타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은 그녀석에게 항복하고 만 닐스 할아버지. 나비는 닐스 할아버지의 생활에 한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고양이에 관련된 책을 많이 읽기는 했지만 내게 있어서 고양이는 무서운 존재일뿐 그닥 좋아하는 대상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림속에서의 고양이는 얼마나 이쁜지 귀엽기 짝이 없다. 가장 좋아하는 녀석은 [콩고양이]에서의 '콩알이'와 '팥알이'다. 그녀석 둘이 사고치는 것을 생각하면 절대 현실에서 그녀석들을 기르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지만 그래도 귀여운 것을 어찌하겠는가. 닐스할아버지는 현실속에서도 그런 재롱들을 보고 싶으셨음에 틀림없다.
고양이는 15년을 넘게 살 수 있고 닐스 할아버지는 이제 칠십을 넘기신 나이니 계속 함께 한다면 아흔살까지는 함께 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난다. 개인적인 바램으로는 나비와 닐스할아버지의 동거가 그때까지 쭉 계속 되었으면 한다. 그들의 아름다운 우정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