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다 죽음을 두려워한다. 죽음 이후의 삶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에게도 여기처럼 똑같은 세상이 존재하고 이미 죽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면, 그런 곳이라면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할까 아니면 서로 먼저 죽으려고들 할까. '애프터 데스'라는 이 책은 주인공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사실 이런 설정은 독특하지는 않다. 이미 많은 작가들이 그 이후의 일을 상상하며 판타지 작품들을 그려내었다. 이 책과 가장 비슷한 작품을 떠올리면 [상심증후군]이 생각날 수 있다. 물론 설정은 전혀 다르다. 그 책은 사랑받지 못해 죽은 사람의 다른 사랑이야기를 그린 것이고 이 책은 자신이 무엇때문에 죽임을 당해야 했는지 모르는 사람의 죽음이후 새로운 사랑이야기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상황설정이 비슷할 뿐이다.
타라덩컨 시리즈로 유명한 소피는 자신만의 죽음이후 세계를 만들어 내었다. 얀 반 에이크의 작품을 보고 생각났다는 이 이야기들은 두렷하게 두가지의 컬러로 구분된다. 빨강과 파랑. 파랑과 빨강으로 이루어진 세계. 제목에서도 그 두가지 컬러는 뚜렷하게 보이고 있다. 무슨 태극문양도 아니고 빨강과 파랑이라니 그 색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저 늦은 밤 집으로 가는 길이었을 뿐인데 제레미는 죽임을 당한다. 그것도 일본도 목이 베어진 채 잔인하게. 그는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 누가 자신을 죽이려 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승승장구에 누가 태클을 건 것인지 아니면 나이답지 않게 돈이 많은 자신의 탓인지 그것도 아니면 엄마가 새로 결혼한 무기사업을 하는 의붓 아버지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뭏든 목이 뎅겅 잘렸고 그 결과 그냥 죽었다. 이제 그에게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빨강과 파랑의 세계. 붉은 빛의 천사와 푸른 빛의 천사. 그리고 각종 여러 색들의 안개.그는 어떻게 애프터 데스의 세계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천사가 되었어도 먹어야 한다. 먹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천사로도 존재하지 못하고 사라질 수 있다. 인간과 같은 것을 먹는 것은 아니다. 안개. 즉 사람들의 감정을 먹는 것이다. 화를 내거나 분노를 일으키는 붉은 안개를 먹으면 붉은 천사가 되고 좋은 감정인 파란 안개를 먹으면 푸른 천사가 된다. 물론 선한 천사다. 골라가며 먹어야 한다.
붉은 천사라고 해도 해될 것 은 없지만 너무 많이 붉은 기운을 섭취하면 그 또한 사라질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천사라고 해서 영원히 사는 것은 아니다. 너무 많이 먹거나 안 먹거나 또는 다른 천사에게 먹혀버리면 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죽음을 조사하던 제레미는 자신의 의붓동생에게 붉은 천사가 달라붙어 있는 것을 본다. 그 붉은 천사는 동생이 잠을 자지 못하게 방해하고 감정을 흐뜨려놓는다. 엄마는 아이에게 수면제를 주어서 재우지만 그것 또한 임시방편일뿐 저 붉은 천사를 내쫓을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된다.. 한편 자신의 죽임의 원인을 추리해낸 제레미의 또라다른 죽음을 막기 위해서 정말 초보천사로써 할 수 있는 최선을 것을 다하게 된다. 자신이 지켜주고 싶다던 그 여자를 죽음에서부터 구해줄수 있을까.
죽음 이후 천사들의 세계를 그리면서 사랑과 모험과 추리와 스릴까지 모든 것을 이 책 한권을 통해서 느끼게 만들어 버린 작가의 능력은 인정해줄 만하다. 익히 타라덩컨 시리즈를 통해서 느껴온 바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같은 이야기. 밥 먹기가 싫으니 나 또한 안개를 먹고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잠시 해본다. 안개 한모금에 저렇게 다양한 맛이 존재한다면 그 아니 참을수가 있을까. 참지 못할 그런 안개의 맛.
진짜 오랜만에 머리 터지겠다. 고등학교때 호기롭게 도스토에프스키의 작품을 읽겠다고 덤볐다가 러시아식 이름에 어지간히 호되게 당한 적이 있다. 아무리 외워도 몇장 지나면 금세 잊어버리는 등장인물들 이름. 읽고 또 읽고 앞으로 넘어갔다 뒤로 넘어갔다를 반복한 기억이 있다. 그 이후로 이름 때문에 헷갈린 적은 별로 없었는데 이 책 제대로 뒤통수, 앞통수, 옆통수를 쳐준다.
유럽 작품들을 꽤 읽었고 어느정도 이름에는 익숙해졌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워낙 등장인물도 많고 부부가 같이 나오기도 하고 결혼하기 전의 성에다 결혼후 바뀐 성, 한 인물의 여러 버전까지 정신없이 흘러가는 통에 이 책을 선물해주신 블로그님처럼 줄기차게 써서 표라도 작성해야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런 이름들이 줄기차게 등장을 하니 분명 따라 읽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친구들이 어디서나 나왔었지 하고 다시 앞 페이지를 뒤적거리게 된다.
심리상담학자인 소피아와 가까와져서 기분이 좋은 예아네테 형사. 일은 일이고 자신의 사생활은 사생활일 뿐을 주장하지만 그녀와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자신이 생각지도 않았던 말까지 다하게 된다. 그녀에게는 어떤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일까. 사건 이야기도 공유해가면서 누가 범인일지 프로파일을 만드는데도 서로의 의견을 나눈다.
그런 예아네테에게 타지역의 경찰이 찾아온다. 무언가 미심쩍다는 것이다. 그 지역에서 화재사건이 일어나서 부부가 모두 죽고 유족으로는 딸이 하나 있는데 그 딸의 기록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이름은 빅토리아. 어떻게 사람의 모든 기록이 단 하나도 남지 않고 사라질 수 있을까. 예아네테는 본능적으로 그냥 넘길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지만 당장은 자기 앞에 놓여진 일들이 더 급하다.
연속적으로 터져나오는 사건들. 부부가 같이 요트를 타고 가다 불이 나서 죽는다. 얼핏보면 그냥 사고로 보아도 무방한데 무언가 이상하다. 그때 당시는 그냥 넘기지만 알고보면 치밀한 계략이 뒤에 숨겨져 있기 마련이다. 한편으로는 또 한 남자가 온통 난자된 채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사건도 있다. 줄기차게 벌어지는 사건들. 대체 누가 무슨 이유로 이 살인을 행하고 다니는 것일까.
벌어지는 일에 비해서 경찰들의 추적은 미미하다. 이 급한 와중에 예아네테의 가족 일과 개인사까지 연결이 되면서 더욱 답답해지는 판국이 된다. 그러나 그것을 가감히 덜어낼 수가 없다. 소피아와 얽힌 예아네테가 나중에 어떻게 당할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긴장을 하면서 즐기게 된다. 독자입장에서는 이미 누가 범인인지 알고 있다. 어떤 이유로 그랬는지도 짐작할 수 있다. 단지 본모습 속에 감춰져 있던 인격이 무엇을 계기로 활발하게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는지가 궁금할 뿐이다.
모든 것을 알게 된 후의 예아네테의 반응도 궁금하다. 자신이 믿고 의지하던 사람이 자신에게 반대되는 행동을 했다는 거을 알게 될 때 그녀의 반응이 궁금하다. 엉망이 되어버린 그녀의 가족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지도 궁금해진다. 여러 인격이 존재하는 병은 치유가 가능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