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경찰을 언제 보셨습니까? 경찰서와 마주하고 있는 아파트에 살고있는 저는 남들보다는 경찰을 볼 기회가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경찰에서 근무하는 친구들 -의경이라고 하지요- 이 열을 지어서 구호를 외치며 동네를 뛰는 일도 자주 보지요. 이 책의 번역자는 무단횡단을 하면서 경찰을 본 모양입니다. 딱지를 떼지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나 할까요.
번잡한 도시의 마을이 아니라 하더라도 역앞에서는 별별 일이 많이 일어납니다. 이 책의 배경도 그런 역전 파출소입니다. 이곳에 처음 발령을 받은 세이다이 경찰관. 속으로는 불만이 가득합니다. 더운날 한바퀴를 돌아야 하는 것도 딱 귀찮고 싸움을 일으키는 고등학생들 뜯어말리는 것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한테 무엇을 물어보는 것도 귀찮습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끌리는 상관과 함께 한사람의 경찰로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실 세이다이는 경찰이 되고자 한 것은 아이니었습니다. 그저 껄렁하게 살던 프리터족이었지요. 그러다 여자친구한테 버림을 받고 홧김에 저지른 일이 경찰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무슨 투철한 직업의식같은 것을 기대하면 안되겠지요. 더군다나 상관이 가장 마땅치 않아 하는 귀걸이. 물론 근무할때는 착용을 하지 않지만 귀뚫은 흔적은 그대로 남아있으니 아무래도 누에 띌 수 밖에요. 그러나 세이다이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근무시간외 사새활은 노터치라는 것이겠지요. 동료들과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는 그지만 근무시간외에는 어김없이 귀걸이를 빼놓지 않습니다. 동료들이나 상관과의 술자리에서도 마찬기죠. 요즘 젊은이들을 대변한다고나 할까요.
처음에 '순경아저씨'라고 불리웠을때는 어리둥절합니다. 누구를 부르는지 몰라서겠지요. 자신을 부른다는 것을 알고 다가가지만 대민방법도 잘 몰라 어리벙벙하고 시민들이 바라는 일을 자리가 잘 처리해줄수 없어 결국 상관을 부르고 나서야 일이 처리가 됩니다. 자존심은 있는지라 자신이 할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서 하자고 생각합니다.
경쟁심도 세서 동기와 함께 내기를 하기도 합니다. 누가 더 불심검문을 먼저해서 범인을 잡는가 하고 말이죠. 당연히 자신이 이길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운은 자신의 편이 아니었습니다. 동료에게 선수를 뺏기고 난 이후 그는 야간근무때만 되면 눈에 불을 켭니다. 자신도 한 건 하고싶다는 말이겠지요. 나쁜 놈들은 잡아가라고 버젓이 나와있답니까. 그렇게 녹녹하지 않습니다. 잔업무들은 늘어만 가고 요리를 담당하는 주임처럼 자신도 편안히 여생을 지내볼까 생각도 해보고 자신은 경찰의 체질이 아닌가보다 하면서 그만둘 생각도 해보고. 다사다난한 세이다이의 초짜 경찰 분투기가 전면에서 벌어집니다.
잔잔한 이야기만 계속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세이다이경찰을 강하게 만들기 위함일까요. 마지막으로 갈수록 센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나와줍니다. 하이라이트는 아무래도 방화범을 잡아내는 일일게지요. 교통 경찰과 팀을 이뤄서 방화범을 잡으러간 세이다이. 무전기조차 꺼놓고 잠복을 하고 있어서 나중에 상관에게 혼이 나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 세이다이 경찰 한건 해냈습니다. 이제는 자신이 경찰로써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잘 알 수 있겠지요.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만 독자인 우리로써는 다음 이야기를 기대해보게 만듭니다. 어느정도 성장한 경찰 세이다이를 볼수 있으면 좋겠지요. 동료인 미우라오 함께 팀을 이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약간의 로맨스도 일어난다면 더 좋을 것 같고. 왠지 모르게 약간은 신입사원의 입장에서 그려지는 일본판 투캅스를 보고 있다는 느낌도 듭니다.
딱 기가 막힌 타이밍에 '무한도전'을 보았다. 매번 그 시간에는 수업이 있어 보지 못하는데 이번주는 시간이 생긴 덕분에 책을 보다가 올림픽을 보려고 켰던 그 타이밍에 안창호 선생의 아들이라면서 어떤 할아버지 한 분이 나와 있었다.
안창호? 내가 알고 있던 그 도산 안창호? 이름은 익히 알아도 사진으로 많이 봐왔어도 대체 그 분이 무슨 일을 하신 분인지 설명하라고 하면 막막해지는 느낌이랄까. 그냥 대충 얼버무리자면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에 앞장서신분이라고 표현할 밖에 더 붙일말이 없었다. 분명 도산공원이라고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그 옆을 몇번이고 지나갔었을것임에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선생의 내외분이 그곳에 묻혀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들어가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하나의 예능프로그램을 보면서 나는 참 많은 것을 깨달았다. 더불어 내가 학교에서 배운 국사라는 과목을 통해서 신석기, 구석기,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 조선까지는 어느 정도 기본지식은 있었으나 그 이후 한국의 근,현대기에는 전혀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무식쟁이임이 드러나고 말았다. 일단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역사라는 과목을 전공하지 않는 이상, 역사라는 것에 관심이 있지 않는 한 외면하고 살아왔던 것이 현실인 것이다.
우리가 한가지 잊고 있었던 것이 역사가 있기에 우리가 지금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분들이 그렇게 열심히 독립을 위해서 싸워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국민이 될 수 있었을까. 자칫하면 중국의 속국이 되었을지도, 또는 일본의 속국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한국말은 세종대왕의 노력과는 전혀 상관없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노고에 정말 머리 숙여 엎드려 절이라도 해야 할 것이다. 지금의 우리들은 말이다.
이 책은 일본의 흔적을 따라서 답사를 하고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 놓은 것이다. 말이 좋아 흔적이지 그냥 마구 말하면 일본의 잔재들이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점령하면서 그들이 우리나라 곳곳에 남겨 놓은 건물들, 방공호들. 아름다운 건물을 보고 좋아하기보다는 그 건물을 짓기 위해서 우리나라의 노동력이 얼마나 많이 투입되였을까.
그들은 제대로 된 임금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밥도 제대로 못 먹으면서 배 곯아가면서 남의 건물을 짓기 위해 노력을 했던 것이다. 그것은 비단 우리나라 뿐 아니라 지배를 받았던 나라들이라면 어디나 공통적으로 벌어지는 일들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말이다. 그 존재를 없애기 위해서 조선총독부는 건물을 폭파시켰었다. 그래도 한채, 두채 있는 가옥들은 여전히 남아 우리의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저자들이 찾아낸 여러 흔적들은 실제로 지금 다른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 것도 있었고 나라에서 지정해서 더이상은 주민들이 사용하지 못하게 된 건물도 있었으며 그냥 지나치면 모를 뻔 했는데 그들의 답사중에 찾아낸 방공호들도 있었다. 우리나라 곳곳에 이렇게 많은 흔적들이 있는 줄 몰랐다. 가깝게는 서울 남산을 비롯해서 용산에서부터 인천을 거쳐 멀게는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흔적은 많았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알아야 한다. 그래야 볼 수 있다. 모른다면 그냥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물일지도 모른다. 알고 나면 새롭게 보이는 우리의 치욕의 역사다. 배우고 알아서 우리의 힘을 길러서 두번 다시는 남들에게 침략을 당하지 않는 강한 나라가 되어야 한다. 한 권의 책으로 인해서 나는 역사 공부를 좀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개그콘서트 중에서 '대화가 필요해'라는 코너가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다. 엄마, 아빠, 그리고 아들로 이루어진 한 가족이 저마다 자신의 할일이 바쁜 나머지 밥 먹는 식탁 앞에 앉아 있지만 대화가 없다는, 그래서 대화가 필요하다는 상황을 콩트로 구성한 것이었는데 집집마다 얼마나 그렇게 살아왔으면 대공감을 했던 코너였다. 코너는 종영되었지만 지금 이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대부분의 가족들이 그 코너와 똑같은 삶을 계속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아빠는 그저 회사에 있는 사람이고 주말에는 지쳐서 꼼짝도 않고 텔리비젼과 소파만 붙들고 있을 것이고 엄마는 전업주부라 해도 또는 워킹맘이라 해도 이래저래 힘든 삶을 살아갈 것이다. 자신의 위치를 인정해 달라고 항의아닌 항의를 하면서 말이다. 또한 우리의 자녀들은 어떠한가. 초등학생이라도, 중고등학생, 대학생이라 하더라도 어느 하나 쉽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친구관계에서부터 성적과 공부 그리고 진로에 이르기까지 뭐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
아빠는 회사에서의 힘듦을, 엄마는 자신의 일의 힘듦을 그리고 자녀들은 학교에서의 힘듦을 서로 집에 와서 하루의 일과를 이야기하면서 나눌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저마다 들어오는 시간은 열두시를 육박하기에 이르고 대화는 커녕 다음날을 준비할 잠을 자기도 빠듯한 시간이 된다. 참 불편한 현실이고 암담한 루틴이다. 이것은 비단 우리나라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리디아의 가족 또한 마찬가지니니 말이다. 만약 이 가족이 대화가 있어서 자신의 상황이나 처지 또는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다 털어 놓고 살았더라면 이런 비극은 맞이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빠는 그저 엄마를 닮은 딸이 이쁘기만 했다. 부모님은 중국인이지만 자신은 중국에 가보지도 못했는데 놀림을 받아야만 했던 어린시절을 딸은 답습하지 않기를 원했다. 그래서 끊임없이 물었다. 친구는있니? 누구는 잘있니? 하면서 말이다. 엄마를 닮은 파란 눈을 가지고 있던 리디아. 그러나 아빠를 닮은 나머지 부분들은 어쩔수가 없다. 그 학교에 단 한명뿐인 중국아이가 되면서 그녀 역시 따돌림을 받아야만 했다. 그러나 영리한 그녀는 부모에게 그 사실을 숨겼다. 하나뿐인 오빠는 알고 있었지만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모른 척 하기를 그녀가 원한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아무말 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는 친했다. 그러나 부모가 자신보다는 동생에게 더 신경을 쓴다는 것을 알면서 그는 그저 가족속에 존재한 한 명의 인간일 뿐 더이상 어떤 기대같은 것을 품지 않았다. 오히려 동생에게 미움을 품었을 뿐.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생기고 좋아하는 것이 생기고 그것을 아버니와 나누길 원했지만 아버지는 자신을 봐주질 않았다. 부모의 편애가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 아주 잘 알수 있는 경우다. 문제아이가 그냥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 뒤에는 반드시 부모가 있게 마련인 것이다.
부모가 어떻게 생행동하느냐에 따라서 아이는 바뀔수도 있다. 아이란 자신의 인격을 가지고 있지만 어렸을 때부터 이미 형성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교육을 시키느냐에 따라서 아이는 변화되기 마련인 것이다. 이미 인격이 완성된 후라면 늦을 것이다.지금 당신의 아이가 어떤지 다시 물어봐야만 한다. 아주 안타까운 이야기가 전면부에 흐르고 있지만 그래도 이 가족이 한 명의 희생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부모의 무관심에 버려져 있으면서 자신의 길을 좇아서 최선을 다해 하버드에 입학한 아들 네스, 언니에게 쏠려 자신이 있다는 사실도 잊고 살았던 부모에게 이제는 관심을 받게 된 한나에 이르기까지 리 가족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가족의 모습으로 살아가야할 것이다. 물론 이 가족의 일원이었던 리디아의 모습을 잃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들에게는 아직도 아이가 둘이나 있다. 돌봐주어야 할 손길을 기다리는 아이가 말이다.